2009년 10월 6일 화요일

도쿄가 올림픽 후보지에서 탈락한 이유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가 2016년 하계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됐다.
 
10월 3일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제31회 하계올림픽 개최지 결정을 위한 국제 올림픽 위원회(IOC) 총회에서 도쿄, 시카고, 마드리드, 리우데자네이루 네 도시는 과반을 획득한 도시가 없어 3번의 투표를 벌이는 접전을 펼쳤다.
 
3차 결선투표는 리우데자네이루와 마드리드의 양자대결로 치뤄졌고, 시카고는 1차 투표, 도쿄는 2차 투표에서 탈락했다.
 
IOC 위원들은 '남미대륙 최초개최'라는 대의명분과 IOC의 대륙별 순환개최라는 암묵적 룰에 따라(2012년이 런던올림픽인 관계로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개최될 경우 2회 연속으로 같은 대륙에서 열리는 것이 됨), 비록 치안문제 해결 등의 과제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리우데자네이루의 손을 들어 줬다.

한편 1964년이후 52년만의 하계올림픽 유치를 노렸던 도쿄는 2차 투표에서 최하위로 탈락했다. 이로써 일본은 64년 도쿄 올림픽 이후 도전한 하계올림픽 유치전에서 3번 연속으로 떨어졌다(1988년 나고야, 2008년 오사카, 2016년 도쿄).
 
도쿄의 경우, 이시하라 신타로 도지사는 물론,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까지 코펜하겐으로 달려가 '도쿄 올림픽=환경 올림픽'을 주장하고 또 중앙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하지만 정작 그 어느 누구도 '왜 2016년에 도쿄에서 열려야 하는지', 그 이유를 명확하게 제시하지 못했다.

왜 도쿄에서 열려야 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지 못해
 
도쿄가 2016년 하계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될 경우 2008년 중국 베이징에 이어 8년만에 다시 아시아 대륙에서 올림픽이 열리는 셈이 된다.
 
2012년 올림픽 개최 예정지가 런던이라는 점도 악재로 작용했다. '선진국의 수도' 런던에서 다시 '선진국의 수도'인 도쿄로 간다는 것은 중진국 이하 IOC 위원들의 투표행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리우데자네이루가 개최후보지 중 하나였다는 점도 도쿄탈락을 부채질했다.
 
흔히 브릭스(BRIC's)로 불리는, 이른바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의 떠오르는 신흥경제 4국 중인 한 곳인 베이징에서, 전통적 강대국인 영국의 런던으로 간 후 다시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로 온다는 이상적인 시나리오에 도쿄가 등장할 틈이 없었던 것이다.
 
사실 이시하라 도지사가 06년 봄 올림픽에 입후보하겠다고 발표한 후 후쿠오카시와의 처절한 경쟁에 들어갔을 때, 2007년 4월 도쿄 도지사 선거 유세전에서 '도쿄 올림픽 유치'를 정식 공약으로 내걸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당시 이시하라 후보는 거리유세에서 "내가 젊었을 때 경험한 64년 도쿄올림픽의 열기와 흥분을 우리 다음 세대들에게 물려주고 싶다.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고 싶다"라고 목청을 높였다. 물론 이를 액면 그대로 믿어선 안된다.
 
기자가 당시 이시하라 후보진영의 선거대책위원장이었던 삿사 아쓰유키를 인터뷰했을 때 그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꿈도 좋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올림픽 도시로 결정나면 중앙정부가 움직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시설정비도 해야 하고, 현재 도쿄의 최대 문제인 교통정체도 정부가 나서서 분담금을 내거나 도로를 늘리거나 간죠센(環状線, 도쿄외곽을 둘러싸는 순환도로) 도 정부가 손을 봐야 한다. 즉 올림픽을 계기로 정부자금을 이용해 도쿄의 제반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 도쿄, 올림픽 탈락에 이시하라 사면초가 

 

 

2009년 9월 9일 수요일

일본 유권자들, 이런 마음으로 투표했다

민주당의 압승으로 끝난 제45회 중의원 총선거는 유권자들의 참여율도 높았다. 소선거구제가 처음으로 도입된 96년 제41회 총선거 이후 가장 높은 투표율인 69.28%를 기록했고, 이들의 약 3분의 2는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에 표를 던졌다.

하지만 선거당일 NHK가 실시한 출구조사에 따르면 자민당을 지지하는 유권자가 35%로 집계됐다. 이는 31%의 정당지지율을 기록한 민주당을 앞서는 수치다. 그러나 개표결과는 주지하다시피 민주당의 308석(총의석수 480석) 획득으로 끝났다.

일본의 유권자들은 과연 어떤 심정으로 투표소에 들어갔던 것을까? 민주당 정권탄생으로부터 만 하루가 지난 9월 1일 도쿄 일대에서 직접 유권자들을 만나 투표당일 이야기와 그 심정을 들어보기로 했다. 기자가 만난 유권자는 총 16명이며 이중 12명이 투표했다고 밝혔다. 투표를 하지 않은 4명에게 투표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묻자 2명은 '날씨가 좋지 않아서'라고 답했고, '급히 약속이 생겨 못갔다'가 1명, '그냥 (투표소에) 안갔다'가 1명이었다.

투표한 12명중 '소선거' 및 '비례'를 전부 민주당 후보 및 민주당으로 투표한 유권자는 6명이었다. 3명은 지역구는 민주당 후보에 투표했지만, 비례대표는 각각 '자민당'과 '우리모두의 당(みんなの党), 그리고 '신당일본(新党日本)'에 넣었다고 밝혔다. 지역구만 놓고 본다면 12명중 10명이 민주당 후보에 넣었다는 말이 된다.

한편 소선거, 비례 전부 자민당에 넣은 이는 정경학부를 다니는 대학생 1명에 불과했다. 다른 한명은 정년퇴직자로 소선거는 자민당 후보에 넣었지만, 비례는 민주당에 넣었으며, 투표는 했지만 그 내용을 말해주지 않은 사람이 1명 있었다.

흥미로운 건 둘다 민주당에 넣은 유권자 6명중 3명이 05년 총선거에서는 자민당에 넣었다는 것이다. 이 말은 곧 앞으로 민주당이 정권공약을 어떻게 실현해 나가느냐에 따라 다음 총선거의 투표성향이 바뀌어질 수도 있다는 의미다. 실제로 "민주당에 기대는 안하는데, 워낙 자민당이 헛발질만 하는지라 (민주당에) 넣었을 뿐"이라고 답하는 이가 상당수였다.

다음은 이들과 나눈 대화중 몇개를 추려 보았다.

 

일본 유권자들 어떤 심정으로 투표했나?


2009년 9월 4일 금요일

일본정부, 아이1명당 매월 35만원씩 15년간 지급

민주당 마니페스토(정권공약)의 핵심인 '어린이수당'이 가장 먼저 실현될 것으로 보인다.
 
정권교체에 성공한 민주당이 2일 공식기자회견을 통해 "어린이수당 제도 창설을 위한 관련법안을 가을임시국회에서 성립시킬 것"이라고 발표했다.
 
민주당이 내걸었던 '어린이수당'은 이번 정권교체의 주역으로까지 불린 핵심공약으로 이번 가을 임시국회에 통과한다면 내년 6월부터 시행될 것으로 전망돼, 사실상 민주당 정권공약 중 가장 먼저 실현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의 '어린이수당'은 "아이가 태어난 직후부터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15년간 1인당 매월 2만 6천엔(한화 약 35만원)씩, 소득제한이나 국적같은 그 어떠한 제한조건도 없이 일률적으로 지급한다"는 내용이다.

 

물론 지금까지의 자민/공명 연립정권도 '아동수당'이라는 이름으로 육아지원을 해 왔다. 하지만 그 내용은 민주당의 어린이수당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했다. 예를 들어 세대수입이 일정액을 초월할 경우 아동수당은 지급되지 않았다. 기준이 되는 세대수입은 회사원이 연간 860만엔, 자영업자가 연간 780만엔으로 이를 초과해버리는 경우 아동수당을 받지 못하게 된다.
 
또 지급금액도 민주당의 2만 6천엔보다 훨씬 낮다. 현행 '아동수당'은 첫째와 둘째 아이가 만3살이 될 때까지 매월 1만엔씩 지불하지만, 3살이 넘어서면 매월 5천엔을 지급하도록 되어 있다. 셋째부터는 3살이 넘어서도 매월 1만엔을 받게 된다. 게다가 그 지급기한도 초등학교 졸업까지로 정해져 있다.
 
그래서 민주당의 매월 2만 6천엔, 중학교 졸업시까지 제한없는 일률지급을 내건 '어린이수당'이 자민당과의 차이를 확연히 드러내는 핵심공약으로 기능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민주당의 파격적인 '어린이수당'에 대해 보수논객들과 자민당은 "재원론"을 꺼집어 내며 공격했다. 민주당이 스스로 발표한, 어린이수당에 들어가는 매년 5.4조엔의 재원을 도대체 어디서 마련할 수 있냐는 것이다.
 
하지만 민주당은 처음 1년간은 50%수준인 1만 3천엔을 지급하며, 관청의 낭비예산과 숨겨둔 비상금(매장금)을 활용한다면 집권 2년도부터 2만 6천엔씩 충분히 지급할 수 있다면서, 년도별 예산편성의 합리화로 재원을 충분히 마련할 수 있다고 강조해 왔다.예산편성의 합리화는 곧 일본의 육아지원정책에 대한 반성에서 온 것이라 볼 수 있다.
 
저널리스트 진보 데쓰오는 자신의 저서 <민주당이 약속하는 99개의 정책으로 일본은 어떻게 변해 갈 것인가?>에서 이렇게 지적하고 있다.
 
"다른 선진국과 비교했을 때 일본의 육아지원급부금(어린이수당, 육아휴업수당, 보육서비스등의 합계) 총액은 GDP에 대비해 볼 때, 고작 1.2% 수준에 그치고 있다. 프랑스, 영국, 독일등은 3%이상이다. OECD 가맹국 30개국의 평균만 보더라도 일본의 거의 2배에 해당하는 2.3%다. 특히, 프랑스와 영국은 육아지원 급부금의 증액으로 출산율 회복에 성공했다.
 
민주당의 정권공약처럼 매월 2만 6천엔씩 지급해도 일본의 급부금은 GDP 대비 2.2% 정도가 될 뿐이다. 프랑스의 3.8%, 영국의 3.6%등과 비교해 본다면 아직도 부족할 정도다. 이걸 보면 지금까지 얼마나  다른 나라들이 육아정책에 신경을 써 왔는지 알 수 있다" (<민주당이 약속하는 99개의 정책으로 일본은 어떻게 변해 갈 것인가?>, 진보 데쓰오, 다이아몬드사, 45페이지)
 
민주당이 가을임시국회에서 어린이수당을 통과시킬 경우 2010년도 관련 예산은 2.7조엔으로 예상되며, 2011년부터는 5.5조엔이 투입된다. 민주당은 초기 4년간은, 관청의 낭비예산에서 뽑아낸 17조엔을 적절히 사용하면서, 서서히 예산편성에도 메스를 들이댈 계획이다.
 
한편 민주당이 가을임시국회 성립에 강한 의지를 보이는 데는 내년 7월에 실시될 참의원 통상선거를 염두에 둔 측면도 있다. 내년 정기국회에서 어린이수당 관련 법안을 제출한다 하더라도 법안성립이 늦어질 경우 내년 예산에 포함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을임시국회때 통과시켜두면 별다른 일이 없는한 내년도 예산에 편성된다.
 
3개월에 한번씩 지급하는 현행지급방식을 따른다면, 시행 첫해의 경우 매달 1만 3천엔 곱하기 3개월이므로 아이 1명이 있는 가정은 3만 9천엔을, 아이 3명이 있는 세대의 경우 무려 10만 8천엔(한화 약 140만원)을 6월말에 지급받게 된다. 당연히 7월 참의원 통상선거에서도 민주당이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미혼이나 아이가 없는 세대, 그리고 이미 지급기준을 넘어버린 15세이상의 자녀를 둔 사람들은 "결국 우리가 내는 세금이 그들을 먹여살리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기 때문이다.
 
이런 비판에 대해 <니혼TV>의 와이드쇼 '미야네야'에 출연한 한 민주당 의원은 "정책이라는 것이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으며, 이런 부분은 서로가 이해해줘야 할 측면이 있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린이수당이 늘어나면 일시적으로 손해를 본다는 사람들이 나올 수도 있지만, 이 제도로 인해 아이들이 많이 태어나 인구가 늘어나면 장래적으로 봤을때 연금기금은 물론, 경기정책등 사회전체를 활성화시키는 측면이 있다. 전체적으로, 크게 봐줬으면 한다"

'여당' 민주당의 시도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지 주목받고 있다.

 

2009년 9월 1일 화요일

일본 유권자들은 어떤 심정으로 투표했을까?

민주당의 압승으로 끝난 제45회 중의원 총선거는 유권자들의 참여율도 높았다. 소선거구제가 처음으로 도입된 96년 제41회 총선거 이후 가장 높은 투표율인 69.28%(비례는 69.27%)를 기록했고, 이들의 약 3분의 2는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에 표를 던졌다.

하지만 선거당일 NHK가 실시한 출구조사에 따르면 자민당을 지지하는 유권자가 35%로 집계됐다. 이는 31%의 정당지지율을 기록한 민주당을 앞서는 수치다. 그러나 개표결과는 주지하다시피 민주당의 308석(총의석수 480석) 획득으로 끝났다.

일본의 유권자들은 과연 어떤 심정으로 투표소에 들어갔던 것일까?

 

민주당 정권탄생으로부터 만 하루가 지난 9월 1일, 도쿄 일대에서 직접 유권자들을 만나 투표당일 이야기와 그 심정을 들어보기로 했다.
 
기자가 만난 유권자는 총 16명이며 이중 12명이 투표했다고 밝혔다. 투표를 하지 않은 4명에게 투표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묻자 2명은 '날씨가 좋지 않아서'라고 답했고, '급히 약속이 생겨 못갔다'가 1명, '그냥 (투표소에) 안갔다'가 1명이었다.

투표한 12명중 '소선거' 및 '비례'를 전부 민주당 후보 및 민주당으로 투표한 유권자는 6명이었다. 3명은 지역구는 민주당 후보에 투표했지만, 비례대표는 각각 '자민당'과 '우리모두의 당(みんなの党), 그리고 '신당일본(新党日本)'에 넣었다고 밝혔다. 지역구만 놓고 본다면 12명중 10명이 민주당 후보에 넣었다는 말이 된다.

한편 소선거, 비례 전부 자민당에 넣은 이는 정경학부를 다니는 대학생 1명에 불과했다. 다른 한명은 정년퇴직자로 소선거는 자민당 후보에 넣었지만, 비례는 민주당에 넣었으며, 투표는 했지만 그 내용을 말해주지 않은 사람이 1명 있었다.

흥미로운 건 둘다 민주당에 넣은 유권자 6명중 3명이 05년 총선거에서는 자민당에 넣었다는 것이다. 이 말은 곧 앞으로 민주당이 정권공약을 어떻게 실현해 나가느냐에 따라 다음 총선거의 투표성향이 바뀌어질 수도 있다는 의미다. 실제로 "민주당에 기대는 안하는데, 워낙 자민당이 헛발질만 하는지라 (민주당에) 넣었을 뿐"이라고 답하는 이가 상당수였다.

다음은 이들과 나눈 대화중 몇개를 추려 보았다. (아래 링크 클릭하세요)

 

일본 유권자들에게 어디에 투표했는지 물어보다 

 

2009년 8월 26일 수요일

日 언론 "북 매스컴 'MB 반말보도'", 왜?

지난 23일 김대중 전대통령을 조문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 북한 조문단과 이명박 대통령과의 직접회담은, 일본 언론에서도 초미의 관심사가 됐다.
 
보수우익으로 분류되는 <요미우리 신문>과 <산케이 신문>은 24일(월) 조간판 1면 탑기사로 양자회담을 다뤘을 정도다. 평상시라면 1면 탑에 걸만한 내용일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전후 최대의 이벤트라 불리우는 중의원 총선거를 앞둔 시기이다.
 
그런데 불과 일주일도 남지 않은 총선거(30일)를 앞두고 마지막 주말의 선거전을 1면 탑으로 올리지 않고 이웃나라의 양자회담을 탑기사로 다루었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내포하고 있을까?

 

이전 기사(日, '정권교체'에 초조해진 "산케이 신문")에서도 밝혔지만 <산케이> 24일자는, 민주당과 자민당의 마니페스토(정권공약)를 비교하면서 "클린턴 방북, 양자회담등 좋은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지만 북한이 이런 분위기를 틈타 핵 및 미사일 개발에 나선다면, 민주당내 친북세력이 나설 우려가 있다"는 식의, '라면' 기사와 '색깔공세'를 동시에 선보인 바 있다.

 

또 보수의 본가를 자처하는 <요미우리>는 25일자 조간에서, 23일의 양자회담을 다시 한번 다루면서 '북한 매스컴이 이명박 대통령을 부를때 대통령을 빼버리고 이명박으로 일관했다'는 가쉽성 기사를 2면 중앙에 배치했다.
 
외국에서 일어난 이벤트를 이틀연속으로, 그것도 새로운 팩트가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중요하게 배치시킨 <요미우리>의 보도행태는 확실히 평소와 다르다는 느낌을 준다.
 
<요미우리>는 제목도 "북 매스컴, '이명박' 보도 - 호칭 붙이는 것 관뒀나?" 라고 자극적으로 붙였다.
 
신문은 먼저 "북한 미디어는 회담개최를 전할 때 이씨에게 '대통령'이라는 경칭을 붙였지만, 24일부터는 '이명박'이라고만 보도, 경칭을 생략한 비판보도를 내보내는 등 불쾌감을 드러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요미우리>는 "청와대 고관은 이명박 정권의 대북정책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2008년까지 10년동안 계속된 좌파정권으로부터의 전환을 상징하는 키워드로서 우리는 '패러다임 시프트(paradigm shift)' 라는 말을 빈번하게 사용했다"고 하면서 북한이 남측의 '패러다임 시프트'에 따라오지 못한다는 인상을 줬다.
 
신문은 또 청와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같은 민족이라고 하는 남북관계의 특수한 구도에 갇혀 있어선 안된다" 라고 지적하며 "남북이 보편성과 국제질서에 적합한 관계가 되어야만 남북관계는 한단계 진보할 것이라는 의미"라고 보충설명을 자세하게 실었다.
 
<요미우리>는, '이명박 반말보도' 기사옆에 배치된 금강산 개발관련 기사에서는 "외자로 핵개발 우려"라는 강렬한 임팩트를 주는 소제목을 달기도 했다.

이런 기사들은 그 자체로만 본다면 아무 문제가 없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일본 국내적으로 상당히 민감한 이 시기에 자극적인 제목 혹은 그 내용으로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는 기사들이 나와, 2면 우측(일본신문은 왼쪽으로 넘기기 때문에 1면 톱기사를 제외하고는 2면 우측이 가장 가독성이 높다)과 중앙이라는 명당자리에 배치된 이유는 뭘까?
 
그리고 이 기사는 북한 매스컴이 왜 '대통령'이라는 칭호를 붙이지 않았는지에 대한 취재 프로세스 없이 무작정 '북한 매스컴이 경칭을 생략한 비판보도'를 냈다며, '청와대 관계자의 입장을 성실하게 전달'하고 있다.
 
솔직히 이 기사들만 읽는다면 독자들은 북한이 나쁘다는 인상을 받기 쉽다.  빌 클린턴이 방북하고, 북한 조문단과 이명박 대통령 간의 전격적인 양자회담이 성사되는 등 화해무드가 조성되는 상황을 이들 기사에서는 도무지 확인할 수 없다.
 
원래부터 일본의 보수우익 매스컴의 대북보도가 그래 왔기 때문에 그런가 보다하고 넘어갈 수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좀 더 심각하다.
 
왜냐면 독자들이 느끼는 '북한은 나쁜 나라'라는 감정이 "대북위협에서 우리 일본을 제대로 지켜낼 수 있는가?"라는 자민당의 주장에 동조되어버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매일 1천만부를 찍어내는 <요미우리>의 파워를 우습게 봐선 안된다.
 
사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총리를 비롯해 수많은 평론가들이 "엄청난 무언가가 터진다면 몰라도, 이대로 가다간 자민당의 패배는 확실하다"고 말해 왔다. 총선거까지 불과 5일정도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이들이 말하는 '엄청난 무언가'는 물론 북한의 핵미사일이다.
 
그러나 지금 북한 미사일이 일본본토를 향해 날아올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그러다 보니 별것 아닌 가쉽성 기사까지 총동원해서 북한을 열심히 때린다. <요미우리>의 언론혼이라고 불렸던 고(故) 구로다 기요시(黒田清)가 살아서 이런 모습을 봤다면 얼마나 한탄했을까?  
 
<산케이>의 '친북세력' 보도와 <요미우리>의 '이명박 경칭생략' 보도는 일본의 보수언론 수준이 얼마나 떨어졌는지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전후 55년간 지속되어 온 자민당 일당체제에 막을 내릴 이번 중의원 총선거는, 그래서 눈을 뗄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이들 보수언론들의 한반도에 대한 짝사랑도 8월 31일부터는 사라지길 기대해 본다.

 

■ 신문 사진을 보시려면 이쪽을 클릭하세요.

[분석] 총선거 국면, 눈에 보이는 일본 보수우익계 일간지들의 보도행태

 

 

2009년 8월 25일 화요일

日 아소 총리 "돈없으면 결혼하지 마!"

<도쿄신문> (8월 23일 인터넷판)에 의하면 23일밤 도쿄에서 개최된 학생주최 이벤트에 참가한 아소 다로 총리가 젊은층의 결혼에 대해
 
"돈이 없으면 결혼하지 않는 것이 좋다. 돈벌이가 전혀 없다면 (결혼상대로부터) 존경받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고 말했다고 한다.

신문에 따르면 아소 총리의 이 말은,
 
 "결혼자금을 확보할 수 없는 젊은이가 대부분인데, 결혼이 늦어지는 것이 저출산화로 연결되는 것이 아닌가?"
 
라는 참가학생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고 한다.
 
총리의 답변은, 물론 일정한 생활력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보여지지만, 지금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는 불황으로 인해 취업난을 겪고 있는 젊은이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발언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 이 기사가 인터넷상에 게재되자 "자민당이 왜 망했는지 알 것같다", "돈많은 집 아드님은 역시 다르군요"라는 비꼬는 의견이 줄을 이었다. 하지만 "역시 아소총리, 정론입니다", "돈없이 결혼하는 녀석들이 미친 ××들" 등의 아소 총리 발언을 지지하는 의견도 막상막하를 이뤘다.

한편, 아소 총리는 이 발언이 파문을 불러 일으킬 조짐이 보이자,
 
"나는 돈이 없는 게 아니지만 결혼은 늦게 했다. 돈이 있으면 결혼하고, 없으면 결혼하지 말라는 그런 의미에서 한 말이 아니다. 스스로 각자 생각하기 나름이라서 함부로는 말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고 급히 진화에 나섰다.
 
30일날 있을 중의원 총선거는, 90%이상의 유권자가 관심을 보이고 있어 20대의 투표참여율도 그 어느 때보다 높을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아소 총리의 이 발언이 2, 30대 투표율에 영향을 미칠지, 아니면 단순한 해프닝성 발언으로 끝날 것인지 주목받고 있다.

2009년 8월 22일 토요일

도쿄에 마련된 고 김대중 전대통령의 조문소 가 보니

김대중 전대통령의 서거를 추모하기 위한 조문소 및 분향소가 일본각지에 마련됐다.

도쿄의 경우 주일본국한국대사관(이하 '주일대사관')을 비롯해 신주쿠 코리아타운의 재일본한국인연합회(이하 '한인회'), 불교법인 관음사에 서거 다음날인 19일부터 영결식날인 23일까지 마련돼 김대중 전대통령을 기리는 추모객들의 조문을 받을 예정이라고 한다.

단, 관음사는 불교법인의 특성상 정해진 기한없이 영정사진을 계속 걸어놓을 것으로 보인다.

 

■ 일본에서 본 고 김대중 전대통령 서거 관련기사들


일본 언론이 보도한 "김대중 전대통령 서거"
일본 지식인들 "DJ는 민주주의의 거목
[현장] 김대중 전대통령이 납치당한 그랜드팔레스 호텔
<도쿄> "DJ는 이념과 권모의 리얼리스트"
<니혼게이자이> DJ 평전"신념, 인내로 뭉친 세계적 지도자"
<마이니치> DJ 평전 "저항하는 사람, 높이 빛났다"
<요미우리> DJ 평전 "일본에 대한 길고 깊은 애증!"
<산케이> DJ 평전 "북 인권에 눈감은 민주화 투사"
<아사히> DJ 평전 "죽음을 몇번이고 뛰어넘은 철인(哲人)"
'아사히'의 "DJ서거 호외"를 입수하다

고이즈미 전총리, 아소 다로 총리도 조문해

먼저 도쿄 미나토구(港区)의 주일대사관은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례를 국장으로 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서거 다음날 8월 19일 오전부터 분향소 운영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대사관 1층 접견실 내에 임시로 만들어진 분향소에는 평일인 탓에 찾아오는 사람은 적어 보였다. 하지만 관계자에 따르면 "대사관 주변의 한국기업 주재원이나 회사원들이 점심시간을 이용해, 분향소를 찾고 있다"고 한다.

또한 유학생들과 가족들의 발길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어 주말이 되면 많은 한국인들이 찾을 것을 예상, 분향소가 운영되는 23일 18시까지는 직원들이 조를 짜 특별 근무에 들어갈 것이라고 한다.

분향소는 한국을 대표하는 대사관답게 많은 외국공관과 일본 정치인들의 발길도 이어지고 있다. 분향소에는 현재 고이즈미 전 총리를 비롯, 내각 대신들의 추모행렬은 물론, 21일 오후 8시 30분경에는 아소 다로 총리도 분향소를 찾아 조문했다.  

한인회 "코리아타운의 한인들을 위해 만들었다"

오후 5시 20분, 재일코리안이 많이 살고있는 신주쿠 쇼쿠안도오리(職安通り)에 설치된 한인회의 조문소에서는 한인회 간부들이 조문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조옥제 한인회 상임고문은 이번 조문소에 대해 "주일대사관에 마련됐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대사관이 많이 떨어져 있어서 추모하고 싶은 분들이 일부러 찾아가서 조문하기 힘들것으로 생각돼, 한인회 사무실에 마련했다"고 말했다.

또 그는 이번 조문소를 마련한 것은 당연한 것이라며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김대중 전대통령은 대한민국의 민주화와 평화통일을 위해 온 몸을 바쳐 싸우신 위대한 정치지도자시다. 그분을 그냥 보낸다는 게 이상하고 또 많은 분들이 추모하고 싶을 것이다. 한인회 입장에서 본다면 조문소는 당연한 거다. 서거 다음날 19일부터 23일 영결식까지 많은 분들이 오셔서 자유롭게 조문하셨으면 한다"

또 그는 "지난 5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당시는 경황이 없어서 조문소 마련등에 미진한 부분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한인회 임원진 모두가 힘을 합쳐 매일 서너명씩 조문소를 지키고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 JPNews가 찾아갔을 때 조 상임고문을 비롯해 이효열, 배오성 부회장 그리고 한길수 신주쿠한인발전위원회수석부위원장 등이 조문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특히 19일이후 매일 조문소를 지키고 있다는 한 부위원장은 "19일부터 지금까지 약 70여명의 조문객이 찾아왔다"면서 "일본에 온 한국관광객들, 또 일본인들이 일부러 찾아와 조문을 드리기도 했다"고 말했다.

일본에 온지 일주일되었다는 유학생 김재원(22)씨는 "서거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 가슴이 아프고 계속 눈물이 나던 차에 여기 조문소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왔다"며 "남북관계에 대해 마지막까지 염려를 하셨다는 말을 듣고, 김 전대통령님의 유지를 받들어 꼭 평화통일을 이루어내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관음사 방명록의 사연들


지난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돌아가셨을 때 분향소를 마련했던 불교법인 관음사도 조촐한 조문소를 마련했다.

관음사 측은 "국가 원수가 돌아가셨으니 당연한 예우라고 생각한다"며 "영정사진을 계속 남겨둘 것이라고, 조문을 하고 싶은 사람은 언제라도 찾아오라"고 말했다.

한편 관음사의 방명록에는 다음과 같은 추모글들이 실려 있었다.

"○○일본어학교 이××다녀갑니다. 부디 좋은 곳에서 편안한 휴식을 취하시길 바랍니다"
"하늘에서 두분이서 못다한 얘기 하시길 바랍니다. 고마웠어요"
"△△랭귀지 스쿨 박□□ 다녀갑니다. 이제는 정말 걱정없이 편히 쉬시길 바랍니다"
"광주시민으로서 김대중 대통령은 희망이고 꿈이었습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 추모하고픈 분들을 위한 연락처 및 주소

주일본국대한민국대사관
장 소 : 주일본국대한민국대사관 1층 접견실 내
주 소 : 東京都港区南麻布1-2-5 (도쿄도 미나토구 미나미아자부 1-2-5)
기 간 : 2009년 8월 19일(수) 10:00부터 8월 23일(일) 18:00

시 간 : 오전 10시부터 저녁 8시까지
연락처 : (03)3452-7611~9 (내선216, 370)

재일본한국인연합회 사무국
장 소 : 재일본한국인연합회 사무국
주 소 : 東京都新宿区大久保1-12-25 NCビル2F (도쿄도 신주쿠구 오오쿠보 1-12-25 NC빌딩 2층           

기 간 : 2009년 8월 19일(수) 10:00부터 8월 23일(일) 14:00
시 간 : 오전 9시 30분부터 저녁 8시 30분까지
연락처 : (03) 5287-2671/2

도쿄 신오쿠보 관음사
장 소 : 東京都新宿区歌舞伎町2-41-12 2F 관음사
    (
쇼쿠안도오리 돈키호테 건너편 카부키쵸 우체국 옆건물 2층)
일 시 : 2009년 08월 19일(수) ~
시 간 : 오전 10시~ 오후 10시
연 락 : 03-3200-1013
* 분향하러 오시는 분들께서는 양말/스타킹 등은 착용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