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의원 총선거를 한달 앞둔 7월 31일, 자민당이 '성장전략'과 '책임'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마니페스토(manifesto, 이하 '정권공약')를 발표했다.
정권교체를 노리는 민주당은 4일 빠른 7월 27일 '생활중시', '탈관료'를 중심으로 한 정권공약을 발표한 바 있다.
자민당의 '성장전략'과 민주당의 '생활중시'는 역대 그 어느 총선보다 명확하고 알고 쉬워, 유권자의 한표 행사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자민당은 7월 31일 오후 5시 당본부에서 정권공약 발표회를 가졌다.
자민당 총재 아소 다로 총리는 비장한 표정으로 '책임력'을, 먼저 언급했다. 책임감이 아니라 책임력, 즉 '책임을 질 수 있는 역량'이다. 정권공약 발표시기만 본다면 민주당에 선수를 내준 자민당이었지만, 후수의 묘미를 살려 '민주당은 과연 일본을 책임질 수 있는가'라고 반격을 개시한 것이다.
"정권공약에는 실현가능한 '근거제시'와 '일관성'이 필요하다. 자민당은 이것들을 정확하게 보여주고 또 실현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다른 정당과 다른 점이 바로 이 '책임력'이다. 우리 공약은 '마이너스는 플러스로, 플러스는 더욱 플러스로!' 이다" (7월 31일, 정권공약 발표회, 아소 다로 총리)
성장보다는 분배를 강조한 민주당이 출산, 육아, 교육, 연금등 개개인의 복지대책에 방점을 찍었다면, 자민당은 지속적인 성장을 강조했다.
자민당의 정권공약집에는 "2010년도부터 본격적인 경기회복을 통해 경제성장율 2%를 실현해 나가겠다"면서 '중(中)복지・중부담'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내어 놓았다.
아소 총리는 "재원확보 근거조차 없는 '고(高)복지'가 아니라, 개개인의 적당한 부담을 통한 현실적인 복지정책, 즉 '중(中)복지・중부담'으로 나아가야 하며, 이것이야말로 현실적이고 책임있는 정책"이라는 것을 거듭 강조했다. 이는 당연히 민주당의 복지정책을 경계한 말이다.
'생활중시'를 내세운 민주당의 복지정책은 자민당이 충분히 두려워할 만한 내용이다.
민주당은 '임신부터 사망까지'의 과정을 하나의 플로어차트로 보고 구체적인 복지정책을 만들었다. 출산시 55만엔(한화 670만원)의 일시금을, 그리고 그렇게 태어난 아이는 중학교 졸업시까지 매월 2만 6천엔(한화 35만원)을 받게 된다. 또한 고교에 들어가서도 수업료 지원 명목으로 매년 12만엔~24만엔을 지급받게 된다(공립고등학교는 수업료 면제).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연금제도도 일원화시켜 월7만엔의 최저보장연금을 지급받을 수 있도록 했으며, 부족한 의사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의학부 학생을 1.5배 늘리는 제도개혁을 단행하기로 했다.
경제정책에 있어서도 중소기업의 법인세율을 현행 18%에서 11%로 내리고, 최저시급 1000엔 정책, 그리고 제조업의 파견(비정규직) 제도를 원칙적으로 금지한다고 밝혔다.
문제는 이 모든 정책에 어마어마한 비용이 지출된다는 것이다.
민주당이 정권을 잡는다는 가정하에 계산하면, 2010년도 7.1조엔, 2011년 12.6조엔, 2012년 13.2조엔, 2013년 16.8조엔의 추가지출이 생겨난다. 말이 16.8조엔이지 일본의 1년 총예산이 207조엔임을 감안한다면 약 8%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액수다. 게다가 민주당은 소비세 인상 논의를 집권 4년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소비세 인상없이 4년간 총액 49.7조엔을 어디서 끌어올 수 있을까?
자민당은 결국 이 추가지출의 재원마련의 근거를 제대로 대지 못하는 민주당을 "책임력이 없다"라고 비판하면서 국민들의 적당한 부담과 적당한 복지(중복지, 중부담)가 현실적인 책임감있는 정책이라고 논박하고 있는 셈이다.
8월 1일자 <요미우리 신문>이 보도한 자민당 정권공약의 골자는 다음과 같다.
- 2011년도까지 소비세를 포함한 세제발본개혁에 필요한 법제상의 조치를 취해 경제상황이 회복기에 들어섰을 때 지체없이 실시.
- 초등학교에 입학하기전 3년간의 어린이 교육비의 부담을 단계적으로 경감시켜 12년후에는 전면 무상화.
- 2010년도 후반에 연2%의 경제성장을 실현. 앞으로 10년후 가정의 가처분소득을 100만엔 늘림.
- 3년간 40~60조엔의 수요를 창출해 약 200만명의 고용을 확보함.
- 2020년 일본의 1인당 국민소득을 세계 톱클래스로 끌어올림.
- 도주제(道州制)기본법을 빠른 시일내에 제정해 제정후 6~8년이 지나 도주제를 도입.
- 미국을 향하는 북한의 탄도미사일의 요격이나 미사일 방위에 연계한 미국 군함의 방호등이 가능할 수 있도록 필요한 안전보장상의 조치를 취함.
민주당이 예산을 투입해야만 하는 정권공약의 경우 명확한 수치를 제시한 것에 비해 자민당은 ▲ 2010년도 후반 연2%의 경제성장, ▲ 2020년까지 가처분 소득 100만엔 증가, ▲ 200만명의 고용확보, ▲ 2020년 1인당 국민소득 세계 톱클래스 등의 선언이 주를 이룬다. 민주당의 '생활중시'와는 확연히 다른 '성장중시'의 아젠다가 묻어 나온다.
아소 총리는 31일 정권공약 발표회에서도 '경기회복', 곧 '성장중시'를 최우선 과제로 설정했다.
"저는 지금까지 '경기최우선'이라는 생각으로 정책을 실행해 왔습니다. 왜냐면 경기가 회복되지 않는다면 국민의 생활도 안심할 수 없고 다양한 정책을 실현하기 위한 재원도 나오기 않기 때문입니다. 6개월간 4번의 보정예산편성을 실시한 것도 여기에 있습니다. 중소기업이나 지방의 지원, 정액급부금, 고속도로 통행료 휴일 1000엔 정책, 에코포인트 등이 그렇습니다. 이런 노력의 결과 주가는 7,050엔에서 1만엔대로 회복했습니다"(7월 31일, 정권공약 발표회, 아소 다로 총리)
하지만 자민당의 정권공약은 몇가지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시사종합주간지 <주간 아사히>의 야마구치 가즈오미 편집장은 <저널(The Journal)>에서 운영하는 자신의 블로그 "엉망진창 편집장 일기"를 통해 아소 총리의 주가를 예로 든 경기회복을 강하게 비판했다.
"닛케이 평균지수가 아소 다로 수상의 '중의원 해산 선언'이 있었던 7월 13일부터 연일 상승곡선을 타고 있다. 그래프로 보면 V자 회복이란 바로 이런 것이라는 걸 보여줄 정도다. 하지만 이걸 두고 자민당의 경제대책이 먹혔다고 생각하는 건 커다란 착각이다.
오히려 정권교체에 대한 기대감 섞인 고공행진이라고 보는게 맞다. 경제전문가들은 민주당 정권탄생으로 인해 경기가 극적으로 좋아지진 않겠지만 중장기적으로 볼 때, 오히려 GDP도 올라갈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마켓은 이미 정권교체, 8월 3일자 포스팅)
야마구치 편집장은 "실제로 증권회사는 이미 '추천! 민주당 종목주'를 고객들에게 배부하고 있으며, 메릴린치는 아주 세부적으로 나누었다"면서, 아소 내각의 경기활성 대책으로 7천엔에서 1만엔까지 올렸다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했다.
<주간 아사히> 8월 14일자에 따르면, 위에서 언급한 민주당의 육아관련 정책을 본 외국인 투자자가 "이정도 금액을 지원한다면 정말 출생율이 올라갈 것 같다, 이런 대담무쌍하고 용기있는 정책을 재원이 어딨냐는 식으로 공격하는 일본인들은 정말 꿈이 없다"고 탄식했다고 한다.
자민당의 이번 정권공약이 일반유권자들에게 다가가지 않는 이유는 또 있다.
위 '정권공약의 골자'을 보면 자민당의 주요정권공약이 최종적으로 완성되는 기간은 대부분 10년으로 중의원 임기 4년을 훨씬 뛰어넘고 있다. 이에 비해 민주당은 2011년도부터 2014년까지 4년으로 한정시켰다. 임기가 4년인데 10년을 내다보는 정권공약을 유권자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아소 총리는 이번 총선거를 "정책선택 선거"라고 규정했다. 민주당의 '허무맹랑한 생활중시'인지, 아니면 자기네들의 '책임있는 성장전략'인지 양자택일을 하라는 말이다.
유권자 입장에서는 오히려 편해졌다. 90년대 이후 총선거의 접점은 소선구제, 신(神)의 나라, 정권공약, 우정민영화 등으로 사실 일반인의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보기 힘든 것들이 테마였다. 그랬던 것이 이번엔 '생활 VS 성장'으로 정착됐다.
전후(戦後) 일본에 있어, 어쩌면 가장 뜨거울지도 모르는 8월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그 결과는 8월 30일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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