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구형 16년, 재판원판결 15년"
일본 사법제도 역사상 처음으로 일반시민이 참여하는 재판원 제도에 의한 형사재판이 8월 3일부터 6일까지 도쿄지방재판소에서 열렸다.
대상 형사재판은 도쿄 스기나미구에서 일어난 살인죄 사건으로 72세 피고인의 형량과 재판원으로 뽑힌 시민재판원들의 발언 및 그 일거수일투족은 4일내내 전국민적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4일간의 공방끝에 피고인은 당초 검찰측 구형량이었던 16년보다 1년 적은 15년을 선고받았다. 징역 15년이 확정되자, 피고측 변호인들은 "이건 아닌데"라는 표정으로 항소할 뜻을 밝혔고, 피해자측 유가족들도 조금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유족들은 징역 20년을 요구하고 있었지만, 비슷한 다른 판례에서 이런 류의 살인사건의 경우 최종적으로 10~12년 정도의 형량이 떨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16년 구형에 15년 판결'이 의미하는 바는 크다. 이번 판결을 두고 "재판원 제도가 별탈없이 성공적으로 치루어 졌다"며 자화자찬하는 일본의 거대 언론들과는 달리 앞으로 일본의 재판원 제도가 이른바 보수적으로 흐르지 않을까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재판원 제도는 1999년 7월 27일부터 2001년 7월까지 만2년간 내각부에 설치된 "사법제도개혁심의회"에서 처음으로 거론됐다. 당시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는 우정민영화, 연금개혁등 각종 제도 및 시스템 개혁에 강한 의욕을 보였다.
사법제도개혁 역시 총리가 관장하는 내각부에서 주도적으로 진행된 것으로 사법제도개혁추진본부(이하 '추진본부')는 "재판원이 참가하는 형사재판에 관한 법률안"(이하 '법률안')을 국회에 제출, 2004년 5월 21일 법안을 통과시켰다. 당시 법안은 통과로부터 5년후 실시된다는 조건을 붙이고 있었으므로 2009년 5월 21일부터 재판원 제도는 법률적 지위를 가지게 되었다.
재판원 제도는 자민당부터 공산당까지 여야 대다수가 기본적으로 찬성했고, 일본의 주류언론들 "국민의 사법참가가 가능해지면서 사법에 대한 국민의 이해증진과 신뢰도가 향상될 것"이라며 이구동성으로 재판원 제도의 도입을 찬성했다.
법률안 역시 재판원 제도의 시행에서 나타나는 문제점 및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당분간 재판원 제도가 적용되는 사건을 지방재판소에서 벌어지는 제1심의 형사재판 중 살인, 상해치사, 강도치사, 건조물방화, 금품목적 유괴사건등 중대한 형사범죄에만 적용키로 했다.
추진본부는 재판원의 인정에 의해 좌우될지도 모르는 세간의 의혹을 불식하고 피고인의 인권을 충분히 고려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재판원 제도의 적용을 제1심 형사재판으로 한정했다. 또한 재판원으로 뽑힌 일반인들의 심적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재판원 및 그 친족에 피해가 갈지 모르는 사건은 재판관만으로 재판을 진행한다"라는 예외조항을 달기도 했다.
하지만 앞서도 말했듯이 현행 재판원제도의 문제점은 끊임없이 지적되고 있다.
진보와 보수를 막론한 재판원 제도 반대 목소리
<주간현대>, <주간 프라이데이>의 편집장을 지냈으며 '재판방청 매거진'의 책임편집자였던 모토키 마사히코는 JPNews의 취재에 "(재판원 제도에 관한 법률안은) 위헌투성이"라며 "앞으로 사법당국이 마음먹은 대로 굴러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는 일본의 사법제도가 가지고 있는 특수성에서 비롯된다. 일본의 형사재판은 법정에서 역전판결이 나오는 경우가 거의 없다.
무죄추정의 원칙은 유명무실하며 검찰에 기소된 그 순간 99.9%의 확률로 유죄가 결정된다. 유죄율 99.9%. 이것은 전세계적으로 봐서도 그 유례가 드물다. 그래서 일본 매스컴은 용의자가 기소되는 순간 아무개라고 소개했던 것을 실명으로 보도하는 것이 관행화되어 있다.
모토키는 "법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일반시민들이 검찰이 유죄입증을 위해 준비한 수많은 조서 및 자료들을 보고 무죄나 반론을 제시할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면서 "바둑에서 아마추어가 프로를 이길 수 없는 것과 같은 원리"라고 강조한다.
재판원 제도가 시작되면서 사법당국이 강조했던 장점들, 이른바 취조의 가시화, 증거의 전면적 제시등은 하나의 수단일 뿐 일본인의 국민성을 볼 때 법의 프로가 이미 정합적인 능력을 띤 시나리오를 제시한 상황에서 스스로의 주체적 사고로 이견을 낸다는 건 힘들다는 말이다.
모토키는 또 "무엇보다 재판원 제도는 헌법에서 보장한 사상 및 표현의 자유를 현저하게 침해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는 현행 재판원 제도가 무작위로 뽑힌 사람들의 사퇴를 용인하지 않는데서 비롯된다. 즉 사형반대론자나 사람이 사람을 권력적으로 억압한다는 것에 반대하는 사상을 가진 이라도 재판원에 뽑히면 무조건 출석해야 한다.
법률안은 재판원 후보자 결격사유에 대해, 법률안 14조에서 17조까지 명시하고 있는데 그 내용을 보면 ▲ 의무교육을 받지 않은 자, ▲ 금고이상의 형을 받은 전과자, ▲ 일정 지위의 공무원 및 법률관계자, 경찰관, ▲ 사건에 관련하는 불적격사유(피고인, 피해자의 관계자 및 해당사건 관여자등), ▲ 70세 이상, 학생 등으로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무작위로 뽑힌 재판원은 위 사항에 해당되지 않을 경우, 재판원 제도에 참가해야 하는데 이때 위 사항에 해당된다고 거짓말을 할 경우 법률안 110조 '허위의 사실 기재'에 따라 50만엔 이하의 벌금형, 또는 30만엔 이하의 과태료를 내야 하며, 정당한 이유없이 출석하지 않은 자는 법율안 112조에 의해 10만엔 이상의 과태료를 내야 한다.
즉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사상의 자유가 이번 법률안과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것이다. 물론 재판소는 이런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8배수에서 10배수의 후보자를 뽑아 치밀한 면접 및 질문을 거쳐 재판원 6명 및 보결재판원 3명을 두는 보완제도를 채택했지만, 법률안 자체의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보다 큰 문제는 해당 재판에 참가한 재판원의 '비밀엄수 의무'다. 법률안 108조는 비밀엄수의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재판원은 평의(評議)의 경과나 각각의 재판관, 재판원의 의견이나 그 다소의 수(평의의 비밀엄수라고 함), 그 외 '직무상 얻게된 비밀'을 발설해서는 안된다. 이 의무는 재판종료후 생애에 걸쳐 적용된다. 재판원이 평의의 비밀이나 직무상 얻게된 비밀을 발설할 경우 6개월 이하의 징역 또는 50만엔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다만 공판중의 경과에 따라 방청인도 얻게된 사실에 대해서는 발설해도 된다"
이 말은 재판정 안에서 다른 방청인 및 매스컴이 알게된, 이른바 공공의 정보에 대해선 말해도 되지만 재판과정, 즉 증거자료, 수사기록, 피해자・가해자의 인적사항 등에 관해서는 무덤까지 가지고 가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헌법상 보장된 표현의 자유와 배치된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한때 도쿄고등재판소 총괄판사까지 역임한 오오쿠보 다로 역시 5월중순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5월 21일부터 적용된 재판원 제도에 관한 법률안은 헌법상 근거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오오쿠보의 지론은 다음과 같다.
"재판원 제도는 이른바 일본이 취하고 있는 3심제의 하나로 적용되어야 할 것인데, 문제는 일본의 사법제도를 규정하고 있는 헌법 제6장 '사법'에 올해부터 시행되는 재판원 제도와 같은 배심원 제도에 대한 규정이 없다는 것이다. 재판원 제도의 규정이 없으므로 당연히 법률안의 세부적 조항도 성립되지 않는다. 즉 이 나라의 헌법은 법리적 관점에서 봤을 때 재판원 제도를 용인하고 있지 않다"
오오쿠보에 따르면 한국의 헌법재판소에 해당하는 최고재판소 역시 재판원 제도의 평결권에 대해 헌법적 견해에 따라 의문을 품고 있다고 한다. 즉 헌법상 재판원 제도 도입의 근거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평결권이 없는 일반시민이 사법권한을 가진다는 모순을 지적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목소리를 기존 매스컴에서는 거의 들을 수 없다.
8월 3일부터 6일까지 일본의 종합일간지 및 지상파 방송국의 뉴스코너는 "사상 최초의 재판원 제도(요미우리)", "알기 쉬운 법률용어로 풀어(아사히)", "재판원이기에 가능한 소박하면서도 간결한 질문(마이니치)"등으로 채워졌다. 위에서 지적하고 있는 재판원 문제의 본질을 추구한 거대 일간지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이에 대해 <교도통신> 서울특파원을 지냈으며 최근 재판원제도를 비롯한 일본의 사법제도를 철저하게 파헤친 <교수형>(고단샤)을 상재한 저널리스트 아오키 오사무는 JPNews와의 전화통화에서 "전체적으로 일본 매스컴의 저널리즘적 질이 저하됐다"며 이렇게 말했다.
"일선 신문기자들의 심층취재 능력, 본질을 파헤치는 취재자세의 결여가 아쉽다. 또 문제투성이인 이번 제도는 기본적으로 '시민참가형'이라는 그 형식때문에 진보와 보수 내부에서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는 측면이 크다.
일본의 사법제도가 가져왔던 밀폐적 태도를 시민이 참가함으로 바꿀 수 있지 않느냐는 의견이 진보진영에서도 나오고 있고, 보수진영에서도 재판원 제도의 도입을 꺼려하는 의견이 나오고 있으니까. 그러다 보니 일단 그 흐름을 지켜보자는 보도행태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그는 미국의 배심원 제도와 달리 일본의 재판원 제도의 근본적 모순을 지적하면서 반대의 뜻을 명확히 밝혔다.
아오키는 "배심원 제도는 사법제도가 국가권력을 대변한 것을 시민이 판단을 내린다는 시민사회적 가치에 의해서 태어난 것이지만, 일본의 재판원 제도는 재판원이 재판관들과 동석한다는, 즉 권력을 감시하는 게 아니라 권력이 되어 버린다는 점에서 출발자체가 잘못되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 그는 "진정한 시민의 공정한 참가, 시민사회의 양식을 위한다면 살인사건등 감정에 의해 좌우되기 쉬운 재판보다 국가권력의 오용, 정치인의 비리등 시민사회의 상식적 감시가 필요한 재판에 이 제도가 도입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일본의 재판원 제도, 하지만 그 앞날이 그렇게 순탄할 것 같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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