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대통령의 서거는 일본의 지식인들에게도 큰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김 전대통령은 한국의 그 어느 인물보다도 일본 지식인들의 존경을 받았기 때문이다.
일본의 월터 크롱카이트로 불렸던 언론인 고(故) 치쿠시 테츠야는, 2005년 5월 23일 김 전대통령의 도쿄대 야스다 강당 강연회에서 "김대중 대통령님은 전세계 민주주의의 역사에 영원히 남아있는 거목"이라며 90도로 허리숙여 깊이 인사한 바 있다.
나카소네 야스히로, 고이즈미 준이치로등 수많은 정치가들을 인터뷰하고 또 공격한 대쪽 저널리스트 치쿠시 테츠야가, 공적인 자리에서 어떤 정치인에게 90도 인사를 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일본의 지성을 대표하는 출판사, 이와나미 서점의 고(故) 야스에 료스케 사장은, 73년 8월 8일 '김대중납치사건'이 일어나던 그때 당시 월간지 <세계>의 편집장을 맡고 있었다.
우연찮게 납치 그날 발간된 <세계> 9월호에는 야스에가 중심이 되어 진행한 민주인사 김대중 선생의 인터뷰가 칼럼 형태로 정리되어 있었다.
곽동의 한통련 상임고문은 그때 일을 이렇게 회고했다.
"(납치됐다는 사실을) 기자들에게 알리고, 그들도 호텔로 달려오긴 했는데, 다들 김대중 대통령을 모르는 거야. 어떻게 설명할 수가 없어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가 <세계>에 인터뷰가 실린게 생각나서 그걸 복사해서 일본 기자들에게 뿌렸지"
이 칼럼이 바로 김대중 전대통령의 이름을 일본사회에 알린 "한국민주화의 길"이다.
이후 야스에씨는 "내 편집자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은, 물론 김대중 선생이시다"라고 공언했다. 또 <세계>는 '김대중납치사건'을 인권유린과 주권침해라 규정하고, 이후 지속적인 시리즈 기사를 게재했다.
80년대 들어 신군부 정권하에서 내란음모죄 등으로 군법회의에 회부돼 사형을 선고받았을 때 일본에서는 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이하 '한민통')을 중심으로 한 재일동포와 일본의 지식인, 시민단체, 노동조합들이 '김대중구출운동'을 전개했다.
김대중 전대통령이 일본의 시민사회에 미친 영향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당시 일본 최대의 노동조합 연합체였던 '총평'을 이끌던 마키에다 의장은, 2006년 기자를 만난 자리에서 과거를 회고하며 "김대중 구출운동을 통해 조직의 힘이 다져진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고 말했었다.
김대중 전대통령의 서거는, 그래서 일본의 지식인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직접 전화를 걸어 그들의 말을 들어보기로 했다.
■ 나가누마 세쓰오(저널리스트동맹 대표, 전 지지통신 기자, 71년부터 김대중 전대통령을 취재함)
"우선 너무나 아쉽다. 정말로 위대한 분이 돌아가셨다.
많은 일본인들은 1973년 8월의 납치사건때부터 김대중 선생에 관심을 가지게 됐지만, 나는 71년 대통령 선거때 한국을 건너가 서울 옥수 초등학교에서 김대중 후보의 엄청난 연설을 직접 육성으로 들었다. 한국어를 거의 몰랐던 내게도 그 연설은 불가사의할 정도로 흡입력을 가졌었다.
김대중 전대통령의 '절망해도 절망해선 안된다'는 말은 내 인생에 많은 영향을 준 세리프다. 또 그가 일본 자민당의 아시아 아프리카 의원연맹의 초대를 받아 왔을때 스스럼없이 '일본의 정치가중에 자국의 현실과 미래에 대해 철학적인 신념으로 말할 수 있는 이가 과연 얼마나 있는가'라고 일성을 토해낸 것은 지금도 기억속에 남아있다."
■ 곽동의 (6.15공동선언실천 해외측위원회 공동위원장, 한통련 상임고문. 80년대 김대중 구출운동의 선봉에 섬)
"나라의 손실이자 국민의 슬픔이다. 건강하게 퇴원하시길 마음속으로 빌고 있었는데, 끝내 이렇게 돼버려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 김 전대통령께서는 나라와 민족을 진심으로 사랑하셨고, 행동하는 양심이셨다. 그 암흑의 시절에 민주주의와 남북통일을 위해 목숨을 걸고 투쟁하신 분이다.
지금 민주주의를 향유하고 있는 젊은이들은 이 민주주의를 획득하기 위해 수많은 선배들이 피를 흘렸고, 또 그 맨앞에 김대중 전대통령이 계셨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진심으로 명복을 빈다."
■ 와다 하루키 (도쿄대학 명예교수)
"김대중 전대통령은 동북아시아의 진정한 평화를 가져온 위인이셨다. 몸이 안좋으셨으니 이런 날이 조만간 올 줄을 알았지만, 속으로는 건강하게 일어나셔서 지금 안좋은 동북아시아 상황을 어떻게 좀 해 주십사라는 기대는 마음도 있었다. 그러므로 김 전대통령의 서거는 역설적으로 그가 남긴 유지를 살아있는 우리들이 받들어야 한다.
생전에 워싱턴과 도쿄에서 한번씩, 나중에 한국에 가서 3번째로 뵈었다. 그때 동교동 자택에서 아침식사를 같이 했다. 조그만 그릇에 나누어서 주는 일본의 풍습과 달리 커다란 생선 한마리를 놓고, 김 전대통령과 젓가락질을 하는데 어찌나 황송스럽던지. 몸둘 바를 몰랐다.
김 전대통령이 남긴 과제를 우리 모두 실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 아오키 오사무 (저널리스트, 전 교도통신 서울특파원, 2006년 겨울 김 전대통령과 단독인터뷰)
"쇼크다. 노무현 전대통령이 돌아가셨을 때도 충격이었지만, 김대중 전대통령의 서거는 차원이 다르다.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평화주의자를, 우리는 지금 잃었다. 진심으로 명복을 빈다.
흔히 김대중 전대통령을 남북관계를 진전시킨 지도자라고 부르지만, 나는 김대중 대통령의 감추어진 업적중 하나로 '한일관계의 획기적 진전'을 들고 싶다. 김 전대통령 시절 일본의 대중문화가 개방됐고, 한일관계가 가장 좋았다.
김 전대통령은 차원이 다른 정치가셨고, 그와의 만남은 내 인생의 메모리로 남을 것이다."
(끝)
DJ가 납치당한 일본 호텔 직접 가보니...
일본언론도 김대중 전대통령의 서거소식 속보로 다뤄
댓글 없음:
댓글 쓰기